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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는 미완의 혁명 아닌 한국민주화의 모태" 4.19회장 민 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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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5-05 06:59 조회2,7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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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은 유난히 한국 현대사의 결절점이 많은 해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 한국전쟁 발발 60년, 광주민주화운동 30년…. 그리고 2010년은 1960년 4ㆍ19혁명이 일어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사사오입 개헌(1954), 3ㆍ15 부정선거(1960) 등 비민주적 행태를 거듭하며 영구 집권을 꾀하던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 맞서 1960년 학생 주도로 국민들이 궐기해 정권 교체를 이룬 4ㆍ19혁명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로 헌법에 명기돼 있다. 정부는 5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4ㆍ19혁명기념관을 재개관하는 한편, 혁명 참가자 900여명을 추가 발굴해 건국포장을 수여하고 국가유공자로 예우할 방침이다.

4ㆍ19혁명 관련 단체들도 지난해 기념사업준비위원회를 꾸리고 50돌을 맞은 4ㆍ19의 이념과 정신을 되새길 각종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4ㆍ19 3대 단체라 할 수 있는 4ㆍ19혁명공로자회, 4ㆍ19민주혁명회(전 4ㆍ19혁명부상자회), 4ㆍ19혁명희생자유족회가 그 주축이다.

4ㆍ19혁명공로자회 민병천(72) 회장을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4.19혁명기념회관에서 만나 혁명 50주년을 맞은 소회를 들었다. 이 단체는 혁명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공로로 건국포장 등을 받은 국가유공자들의 모임으로, 특히 당시 대학 총학생회 간부 출신이 다수 포함돼 있다. 민병천 회장은 당시 홍익대 총학생회장으로 시위대를 이끌었다.

경무대앞 모인 군중 눈에 선해
50주년맞으니 더욱 벅찬 감회

69년 3선개헌 반대 단식 주도
법인 취소·5년간 폐쇄 아픔도

연말 국회는 민주주의 실종
민주적 절차가 무엇보다 중요

세종로 '4·19路'로 개명추진
관련단체 3곳 통합도 과제로


- 4ㆍ19혁명 50주년입니다.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뭐라고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모를 만큼 벅찹니다. 4ㆍ19혁명은 해방 후 이 땅에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12년 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감수성과 열망을 잘 보여준 것이지요. 물론 1년 뒤 5ㆍ16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미완의 혁명'이란 주장까지 나오고 있지만,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으로 일어난 6ㆍ3학생운동부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문민정부 수립까지, 한국 민주화 역사는 4ㆍ19혁명의 이념과 정신으로 추동된 것입니다."

- 5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지난해 가을 관련 단체들과 기념사업준비위를 발족했습니다. 명예총재에 김영삼 전 대통령, 위원장에 이기택 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회장을 모시려고 합니다. 김 전 대통령 집권 때 와서 4ㆍ19가 의거에서 혁명으로 격상됐고, 다시 헌법 전문에 그 가치가 명시됐습니다. 세종로를 '4.19로(路)'로 개명하는 것도 추진 중입니다. 세종로는 당시 경무대(현 청와대), 중앙청과 맞닿아 학생 시위대가 집결했던, 혁명의 본거지입니다. 인근에 4ㆍ19기념관 및 기념비를 건립해줄 것도 서울시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해외 회원 20여명을 초청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 당시 홍익대 총학생회장(학도호국단 학생위원장)으로 시위대를 이끌었습니다. 그때의 시위 상황을 듣고 싶습니다.

"4월 11일 마산에서 김주열 학생 시신이 발견된 게 도화선이 됐죠. 서울 지역 총학생회 간에 물밑 논의를 통해 19일 오전 9시 일제히 경무대와 중앙청 앞에 집결하는 것으로 행동 지침을 정했습니다. 서울 서부지역에선 홍익대와 연세대가 시위를 주도했죠. 경무대 앞엔 대학생만 2만여명을 헤아릴 만큼 엄청난 군중이 몰렸습니다. 여기에 경찰이 무차별 총격을 가하면서 많은 희생자가 났습니다(사망 21명, 부상 172명). 살인 진압은 국민을 격노시켰고, 결국 엿새 후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과 대통령 하야로 이어졌습니다."

- 혁명의 발단인 2ㆍ28 대구 학생의거, 마산 3ㆍ15 부정선거 항의시위 등에 비해 서울 지역 대학생은 뒤늦게 행동에 나섰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당 장기 독재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혁명 전부터 있었습니다. 예컨대 1959년엔 정부가 심상찮은 민심을 잠재우려 전국 학생회장들을 소집, 시국 안정을 요청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서울 지역 학생회장 다수가 이를 거부하자 자리가 소란해졌고, 급기야 폭력 사태가 일어나 동국대, 홍익대 회장이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1960년 3월 13일 경무대에서 시위 자제 성명서를 낼 것을 요구했을 때도 학생회장들이 이를 거부했습니다."

- 5ㆍ16으로 들어선 군사정권 시절 고초는 없었습니까.

"5ㆍ16 쿠데타 이후 4ㆍ19는 바로 혁명에서 의거로 격하됐지요. 비록 박정희 정권 때도 혁명 공로자에게 건국포장이 수여되고 부상자 및 유족에 대한 보상 조치가 이뤄지긴 했지만, 민주혁명을 비민주 쿠데타로 뒤집은 정권 입장에서 4ㆍ19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죠. 4ㆍ19회(4ㆍ19혁명공로자회의 전신)에서 1969년 3선개헌에 반대하며 단식농성을 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1972년 4ㆍ19회 10주년 행사에 당시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초청해 축사를 맡겼다가 원호처(현 보훈처)로부터 법인 취소를 당하고 5년 동안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민 회장은 4ㆍ19회를 되살리기 위해 사재를 털어가며 혼신의 힘을 다한 것으로 회원들 사이에 각인돼 있다. 4ㆍ19혁명공로자회의 한 간부는 "당시 대책을 협의하기 위해 상경한 지방 회원들은 으레 민 회장의 종로3가 자택에서 숙식했다. 단체 문을 다시 열려고 자기 집까지 팔고, 그 와중에 다섯 자녀의 교육도 제대로 못 시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4ㆍ19세대로서 현 시국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안 그래도 지난해 말 예산안 처리를 놓고 정략 다툼만 일삼는 정치권의 모습이 걱정스러워 12개 보훈단체장과 함께 국회에 찾아가 국회의장에게 성명서를 전달했습니다. 야당의 경우 4대강 사업 예산을 문제삼아 덮어놓고 반대를 했는데 그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우리 세대의 상식으로 보기엔 민주적 절차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어느덧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서운한 점은 없습니까.

"문민정부에 와서 4ㆍ19가 혁명으로 복권됐지만 우리 뒷세대들은 그 내용을 잘 몰라요. 정치인조차 말입니다. 일전엔 정부가 4ㆍ19를 데모로 폄하한 동영상을 학교에 배포했다가 장관이 우리에게 사과하기도 했죠. (한 대학교수의 4ㆍ19 관련 인터뷰 기사를 양복 안주머니에서 꺼내들며) 혁명의 산증인들이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속된 말로 '잘 먹고 잘 살아온' 교수들이 4ㆍ19를 남발하며 잘못된 사실을 퍼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이 맞는지 자문이라도 요청했으면 좋겠어요."

민 회장은 보훈처에서 진행 중인 4ㆍ19 유공자 추가 선정 사업에 대해서도 "혁명에 직접 참여해 사정을 잘 아는 당사자를 배제하고 심사위원들을 교수로 채우려 한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 달 선정될 심사위원에 참가시켜줄 것을 보훈처에 요청한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보훈처는 "관련 단체장이 심사를 맡는 건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4ㆍ19회 시절이던 1977~80년에 이어 두 번째 회장 직을 맡고 있는 민 회장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공약사업은 4ㆍ19혁명 관련 3대 단체 통합이다. 그는 "혁명공로자회만 해도 회원 평균 연령이 72세나 되는 만큼 하루 속히 조직을 통합해 4ㆍ19혁명사 정리 등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4ㆍ19혁명희생자유족회가 반대하고 있고, 4ㆍ19민주혁명회는 조건부 찬성 입장이라 통합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 국가유공자예우법 개정도 숙원사업이라고 들었습니다.

"4ㆍ19민주혁명회 회원은 부상 정도에 따른 보상금을 받고, 혁명희생자유족회 역시 연금을 받습니다. 반면 혁명공로자회 회원에겐 아무런 국가 지원이 없습니다. 4ㆍ19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고려한다면 국가유공자예우법 개정을 통해 모든 4ㆍ19 유공자에게 보훈 혜택이 주어져야 합니다."

[약력]

▲1938년 생ㆍ배재고, 홍익대 경제학과 졸업
▲1960년 홍익대 총학생회장, 전국학생연맹 상임부회장
▲1961년 건국포장
▲1977~80년 4ㆍ19회(현 4ㆍ19혁명공로자회) 회장
▲학교법인 상문학원, 선덕학원 상임이사
▲1996년 4ㆍ19육영사업회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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